아프로비트의 선구자 펠라쿠티

이번 포스팅은 아프로비트라는 한 음악 장르를 만든 장본인, 펠라 쿠티(Fela Kuti)의 일생을 통해 아프로비트를 이해하는 포스팅이다. 

그렇다면 왜 아프로비트인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프리카 대륙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키워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가난, 기아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과 관련된 키워드를 많이 떠올리곤 한다. (물론, 요즘에는 사람들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다양성과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륙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들도 있고, 피카소 등 여러 예술가가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

아프로비트(정식 명칭은 아프로비츠 – Afrobeats – 이나, 이미 아프로비트로 많이 불리는 만큼 본 포스팅에서는 “아프로비트”라고 지칭하도록 하겠다.)는 아프리카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세계를 이끄는 월드뮤직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그럼 아프로비트는 어떤 음악 장르일까?

아프로비트는 퍼커션과 함께 아프리카 전통 음악을 기반에 아메리칸 재즈와 펑크가 합쳐서 생겨난 장르이다.

오늘 날에는 아프로비트가 팝, 힙합 / 알앤비 등 여러 장르와 섞여 함께 존재하고 있다.

아프로비트를 기반으로 한 팝, 아프로팝의 대표주자로는 드레이크 (Drake)와 위즈키드 (Wizkid)가 있으며 비욘세 또한 아프로비트를 전곡으로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다. (비욘세의 음악은 본 포스팅 하단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펠라 쿠티의 배경

펠라 쿠티의 본명은 펠라 아니쿨라포 쿠티 (Fela Anikulapo Kuti)로 일반적으로 펠라 쿠티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1938년, 나이지리아가 영국의 식민 지배 아래에 있을 때 태어났다.

펠라 쿠티의 아버지는 영국 성공회 교회 목사님이자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반식민주의 운동 중에서도 페미니스트 운동가였다. 그의 어머니는 가나의 대통령 콰메 은쿠르마 (Kwame Nkrumah)가 나이지리아를 방문했을 때 어린 펠라 쿠티를 데리고 콰메 은쿠르마의 방문을 맞이했다. 콰메 은쿠르마는 가나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인물이며 범아프리카주의 (아프리카의 모든 국가를 하나로 통합하자는 주의)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펠라 쿠티는 중산층의 집안이면서도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의 가르침 자랐으며 영국 런던으로 약학을 공부하러 유학길로 떠났지만 추후 음악으로 전공을 바꾸며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다.

펠라쿠티의 미국 투어

펠라 쿠티는 미국에 가서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리고 유명해져서 나이지리아에 돌아오겠다며 10개월간의 미국 투어를 떠났다. 그는 미국에서 산드라 이자도레 (Sandra Izadore)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만났고 여기서 그의 삶은 많은 변화를 맞닥뜨린다.

미국 LA에서 음악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산드라와 만나며 음악은 물론, 정치에도 눈을 떴다. 산드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아프리카 외부에서 보는 아프리카에 대한 시각을 펠라 쿠티에게 전해주었다. 펠라 쿠티가 산드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산드라는 내가 세상에 눈을 뜨게 도와준 사람이에요. 아프리카에 대해서 전혀 듣지 못했던 것들을 처음 들었어요! 산드라는 내 조언자였어요. 그녀는 내게 정치, 역사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었고, 자신이 아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는데 이건 제가 시작하기에 충분한 지식들이었죠.”

아프로비트 장르의 시작도 미국에서였다. 산드라와 대화를 하며 아프리카인으로서 진정한 아프리카 곡을 연주해본 적이 없다며 이제 아프리카 곡을 연주하겠다며 연주한 곡, 그것이 아프로비트 장르의 첫 탄생이었다.

펠라쿠티의 미국 투어는 아프로비트라는 음악의 장르를 탄생시킨 것은 물론, 아프리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나이지리아 정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노래에 녹여 사람들이 현 정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펠라 쿠티의 곡에 산드라가 노래를 부르는 음악, 업사이드 다운 (Upside Down)

펠라 쿠티와 나이지리아 정부

펠라 쿠티는 나이지리아로 돌아와 “좀비 (Zombie)”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하여 내놓았다. 음악 사이트 ALL MUSIC에 의하면 이 음악이 펠라 쿠티의 음악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음악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이 음악의 그루브가 특정 패턴을 반복하여 따라 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어 나이지리아 전체에 퍼져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군인을 볼 때마다 좀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ALL MUSIC에서 묘사하고 있다. 

좀비 가사를 보면 매우 단순하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좀비”이며 가라고 지시를 받지 않는 이상 가지 않는다, 멈추지 말라고 지시를 받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는다, 생각하라고 지시하지 않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며 좀비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시받은 대로만 행동한다고 묘사한다. 펠라 쿠티는 나이지리아 정부의 군사를 빗대어 좀비를 표현했으며 이 노래는 나이지리아 사회에 큰 파문을 가져온다. 

좀비 노래를 부른 가수들, 심지어 일반인들까지 군인을 흉내내며 권위에 대항한 것에 대한 복수로 나이지리아 군사들은 펠라 쿠티의 공동체, 칼라쿠타 공화국 (Kalakuta Republic)을 공격했는데,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약 1,000명의 군인이 침입하여 펠라 쿠티와 칼라쿠타 공화국 내 60여 명을 구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펠라 쿠티는 폭력적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고, 음악을 무기삼아 그저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했을 뿐이다.

펠라 쿠티의 좀비

펠라 쿠티의 업적

펠라 쿠티는 1997년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오늘날의 삶에는 축제, 뮤지컬, 음악 등을 통해 펠라 쿠티의 흔적이 남아있다.

축제 펠라브레이션 (Felabration)

1998년 펠라 쿠티의 아들 예니 아니쿨라포 쿠티 (Yeni Anikulapo-Kuti)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축제로 나이지리아에 있는 “새로운 아프리카 성지 (New Afrika Shrine)”에서 펠라 쿠티의 생일 주간에 매년 개최된다. 

세계 각국 뮤지션이 모여 연주하고 길거리 축제는 물론, 사회 / 지역 이슈에 대한 심포지옴, 사진 전시회도 열린다.

 

뮤지컬 “펠라(Fela)!”

2008년에는 펠라 쿠티의 삶에 대해 까를로스 무어 (Carlos Moore)가 쓴 책을 기반으로 아프로비트 밴드 안티발라스(Antibalas)와 감독 빌 존스 (Bill T. Jones)가 함께 콜라보로 뮤지컬이 제작되었다. 

이 뮤지컬은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지만 공연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토니상 (Tony Awards)의 최고의 뮤지컬, 최고의 감독 등 여러 상을 받으며 브로드웨이로 진출했고, 런던에서는 영화화가 되기도 했다.

비욘세의 팝 음악

펠라 쿠티가 창시해서 월드뮤직으로 자리 잡은 아프로비트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이기도 하다. 

비욘세의 프로듀서 더드림 (The Dream)은 펠라 쿠티에게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밝혔다. 이 곡은 End of Time으로 아프로비트에서 사용되는 밴드드럼, 퍼커션과 금관악기 호른도 등장한다. 

비욘세의 End of Time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비욘세의 음악에 아프로비트가 가미 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보다 아프리카는 우리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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